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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3.1절에 참배한 이윤재·박용규 지사 유적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6.04.08 22:04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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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산48 묘소, 하빈면 묘동4길 6-30 생가터
지난 3월 1일 대구시 달성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모임 '달탐사'는 '3.1절 기념 다사, 하빈 독립운동유적지 답사'를 실시했다. 이날 김무용 민주평통 달성군협의회 회장, 김명화 달탐사 초대 회장 등 15명은 이윤재, 박용규 두 분 독립지사의 유적을 찾아 참배했다.
이윤재 지사는 조선어학회 사건 때 함흥감옥에서 순국한 한글학자이다. 기미독립만세운동과 허무당 의거로 이미 두 차례 옥고를 치렀던 지사는 1942년 4월 최현배, 이희승, 정태진, 정인승, 이인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던 중 일제에 피체됐다. 조선 지식인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맞이했다고 여긴 일제는 학자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다.
결국 그해 12월 8일 이윤재 지사가 고문치사로 옥중 타계했고, 한징 지사도 이어서 옥사했다. 이윤제 지사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마련됐다가 그 뒤 관리를 맡은 후손이 대구 달성군 다사읍으로 이주함에 따라 이천리 산48번지에 이장되었다. 묘소 옆에는 한글학자였던 지사의 정체성을 기려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묘비도 세워졌다(비문은 한글학자 김윤경 선생 씀).
묘소는 2013년 대전현충원으로 다시 이장됐고, 묘비는 2016년 고향 김해시로 이건됐다. 김해시는 묘비 주변을 공원처럼 꾸며 지사를 정성껏 추념하고 있다. 즉 3월1일 달탐사 회원들이 찾은 곳은 지사의 묘터였다. 모두들 엎드려 절을 올렸고, 김명화 회장은 참배 인사를 대표해 " 무덤도 묘비도 없지만 이곳은 선생께서 계셨던 유허다. 소주 한 잔을 올리면서 앞으로 선생을 잊지 않겠노라 약속드린다" 하고 이윤재 지사를 추모했다.
일행이 찾은 또 다른 참배 장소는 박용규 지사 생가터였다.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6-30 지사의 생가터는 허물어지기 직전 수준의 집 두 채가 ㄱ자 형태로 놓여있는 폐가지여서 답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삼가헌 문중(사육신 박팽년 직계)의 후손인 박용규 지사는 중앙고보 5학년이던 1926년 5월 30일 서울 하숙집에서 만세시위 전단 5만 장을 인쇄해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모인 군중에 배포했다. 시위를 도모하던 여러 단체들이 사전 검속돼 준비가 허술했던 상황에서 중앙고보 학생들의 추진력은 6.10만세운동의 성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하지만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박용규 지사 생가터는 민망할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 답사 참가자들은 "안내판도 세우고, 집과 마당을 약간이라도 정비해 달성군을 찾아오는 답사자들에게 성의를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생가터를 답사한 뒤 곧장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국가민속문화유산 삼가헌을 둘러보았다. 삼가헌은 박용규 지사가 어릴 때 뛰어놀았을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사의 숨결을 느끼는 마음으로 집들과 정자 하엽정, 그리고 연못을 관람했다. 독자들을 위해 현지 안내판의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달성 삼가헌 고택( 達城 三可軒 古宅) 국가민속문화유산
삼가헌 고택은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의 주택이다.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忠正公 朴彭年)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1769년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이름하였다. '삼가(三可)'란 중용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음' 을 뜻한다.
1783년에 성수의 아들 광석(光錫)이 이웃 마을에서 분가하였고, 1826년에는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1874년에는 광석의 손자인 규현(奎鉉)이 원래 있던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약간 앞으로 옮기고 누마루를 달아, 별당채인 하엽정(荷葉亭)을 현재의 모습으로 지었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넓은 터에 안채와 사랑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 그 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다.
답사자들은 삼가헌 옆의 육신사 마을도 방문했다. 이곳은 사육신 직계 남자 후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일산이 성종임금의 지원을 받아 태고정(보물)과 숭정사(사육신 및 박팽년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를 지어놓고 거주했던 마을이다.
박씨집성촌인 이곳은 마을 안에 사육신기념관도 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고택 도곡재와 삼성 이병철 회장 부인 박두을 여사 생가 등도 있어 볼만한 것이 많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거대한 홍살문도 눈길을 끌고, 삼가헌으로 넘어가는 오솔길에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는 낙빈서원도 볼 만하다.
답사가 끝난 뒤 출발 지점이었던 다사역으로 돌아온 김명화 회장은 "일요일마다 환경보호운동을 해 왔는데 앞으로는 한달에 한번씩 달성군과 인근 고령군, 성주군의 역사문화유산을 답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초안을 만들어서 회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보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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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3월 1일 이윤재 지사 묘소를 참배 중인 달탐사 회원들과 절을 올리고 있는 김명화 회장(사진 왼쪽은 2013년까지 이곳에 있었던 묘비) |
| ⓒ 김명희 |
지난 3월 1일 대구시 달성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모임 '달탐사'는 '3.1절 기념 다사, 하빈 독립운동유적지 답사'를 실시했다. 이날 김무용 민주평통 달성군협의회 회장, 김명화 달탐사 초대 회장 등 15명은 이윤재, 박용규 두 분 독립지사의 유적을 찾아 참배했다.
이윤재 지사는 조선어학회 사건 때 함흥감옥에서 순국한 한글학자이다. 기미독립만세운동과 허무당 의거로 이미 두 차례 옥고를 치렀던 지사는 1942년 4월 최현배, 이희승, 정태진, 정인승, 이인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던 중 일제에 피체됐다. 조선 지식인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맞이했다고 여긴 일제는 학자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다.
결국 그해 12월 8일 이윤재 지사가 고문치사로 옥중 타계했고, 한징 지사도 이어서 옥사했다. 이윤제 지사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마련됐다가 그 뒤 관리를 맡은 후손이 대구 달성군 다사읍으로 이주함에 따라 이천리 산48번지에 이장되었다. 묘소 옆에는 한글학자였던 지사의 정체성을 기려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묘비도 세워졌다(비문은 한글학자 김윤경 선생 씀).
묘소는 2013년 대전현충원으로 다시 이장됐고, 묘비는 2016년 고향 김해시로 이건됐다. 김해시는 묘비 주변을 공원처럼 꾸며 지사를 정성껏 추념하고 있다. 즉 3월1일 달탐사 회원들이 찾은 곳은 지사의 묘터였다. 모두들 엎드려 절을 올렸고, 김명화 회장은 참배 인사를 대표해 " 무덤도 묘비도 없지만 이곳은 선생께서 계셨던 유허다. 소주 한 잔을 올리면서 앞으로 선생을 잊지 않겠노라 약속드린다" 하고 이윤재 지사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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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 삼가헌 앞의 박용규 지사 생가터 |
| ⓒ 김명희 |
일행이 찾은 또 다른 참배 장소는 박용규 지사 생가터였다.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6-30 지사의 생가터는 허물어지기 직전 수준의 집 두 채가 ㄱ자 형태로 놓여있는 폐가지여서 답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삼가헌 문중(사육신 박팽년 직계)의 후손인 박용규 지사는 중앙고보 5학년이던 1926년 5월 30일 서울 하숙집에서 만세시위 전단 5만 장을 인쇄해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모인 군중에 배포했다. 시위를 도모하던 여러 단체들이 사전 검속돼 준비가 허술했던 상황에서 중앙고보 학생들의 추진력은 6.10만세운동의 성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하지만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박용규 지사 생가터는 민망할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 답사 참가자들은 "안내판도 세우고, 집과 마당을 약간이라도 정비해 달성군을 찾아오는 답사자들에게 성의를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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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가헌 하엽정과 파산서당 |
| ⓒ 김명희 |
생가터를 답사한 뒤 곧장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국가민속문화유산 삼가헌을 둘러보았다. 삼가헌은 박용규 지사가 어릴 때 뛰어놀았을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사의 숨결을 느끼는 마음으로 집들과 정자 하엽정, 그리고 연못을 관람했다. 독자들을 위해 현지 안내판의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달성 삼가헌 고택( 達城 三可軒 古宅) 국가민속문화유산
삼가헌 고택은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의 주택이다.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忠正公 朴彭年)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1769년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이름하였다. '삼가(三可)'란 중용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음' 을 뜻한다.
1783년에 성수의 아들 광석(光錫)이 이웃 마을에서 분가하였고, 1826년에는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1874년에는 광석의 손자인 규현(奎鉉)이 원래 있던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약간 앞으로 옮기고 누마루를 달아, 별당채인 하엽정(荷葉亭)을 현재의 모습으로 지었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넓은 터에 안채와 사랑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 그 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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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신사 사당 숭정사 |
| ⓒ 김명희 |
답사자들은 삼가헌 옆의 육신사 마을도 방문했다. 이곳은 사육신 직계 남자 후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일산이 성종임금의 지원을 받아 태고정(보물)과 숭정사(사육신 및 박팽년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를 지어놓고 거주했던 마을이다.
박씨집성촌인 이곳은 마을 안에 사육신기념관도 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고택 도곡재와 삼성 이병철 회장 부인 박두을 여사 생가 등도 있어 볼만한 것이 많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거대한 홍살문도 눈길을 끌고, 삼가헌으로 넘어가는 오솔길에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는 낙빈서원도 볼 만하다.
답사가 끝난 뒤 출발 지점이었던 다사역으로 돌아온 김명화 회장은 "일요일마다 환경보호운동을 해 왔는데 앞으로는 한달에 한번씩 달성군과 인근 고령군, 성주군의 역사문화유산을 답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초안을 만들어서 회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보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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